<서현창의 아는 만큼 맛있다> 약방엔 감초, 요리엔 감자… 단단하고 묵직해야 제맛
문화일보 / 2018-06-20 10:51


장마 오기전 출하되는 하지감자… 창원·고령·김제·서산 ‘主 산지’… 국내선 부드러운 수미감자 재배… 녹색 띠거나 싹튼 것은 피해야… 신문지 등에 싸서 그늘에 보관… 사과와 함께 놔두면 싹 덜 자라… 찌기·굽기·튀기기 모두 어울려… 조리법 따라 식감도 ‘천양지차’… 소량으로도 포만감‘다이어트食’… 채썰어 얇게깔아 전 부쳐도 별미
안데스 산악지방은 물론, 세계 곳곳으로 퍼져 한국까지 전해오는 길목에서도 감자는 서민들에게 다시없는 보물이었다. 진짜 감자 맛은 배고파본 사람만이 안다는 말이 있다. 농작물의 흉작으로 굶주릴 때 배고픔을 잊게 해 준 대표적인 먹거리가 감자였다. 긴긴 겨울 서민들의 허기진 배를 가장 쉽게 채워주는 음식도 감자였다.
어느 요리에든 고루 어울리고 큰 것은 큰 것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쓰게 수확 때마다 섞여 나온다. 감자탕, 감자떡, 감자옹심이, 감자범벅, 감자전, 감자튀김, 감자수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리에 감자는 빠지지 않는다.
감자는 가짓과(科) 식물로 남미 안데스산맥 고산지역이 원산지다. 감자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크기, 모양, 색, 맛, 조직감이 각기 다르다. 장미꽃 모양 감자가 있는가 하면 동물 발 모양을 한 감자도 있다. 페루의 국제감자연구소는 7,000여 종이나 되는 감자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서늘하고 물 빠짐이 좋은 토양이 감자 재배에 적합한 환경이다. 햇빛이 많은 곳을 좋아한다. 일교차가 클수록 더 맛있는 감자가 나온다. 강원도 감자가 인기가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 감자는 ⅓이 강원도에서 생산된다. 충남 서산 팔봉산 감자와 경북 고령 감자는 지리적 표시 등록 농산물이다. 경북 고령은 신라 경덕왕 때부터 ‘지대가 높고 양지바른 곳’이란 뜻으로 고양(高陽)이란 지명으로 통용돼 왔는데 감자 재배에 좋은 환경이다.
감자는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한다. 고랭지 감자는 7월부터 수확해 가을까지 나온다. 여름에 심는 감자는 10∼11월에 나온다. 제주도는 겨울 작기에 해당하고 철을 따라 남부, 중부, 강원도 순으로 북상하며 감자가 출하된다. 4∼5월 봄 감자는 하우스 재배 감자다. 저장물량이 많이 출하되는 때도 있다. 하지 무렵에는 창원, 고령, 김제, 서산, 옥천 등에서 주로 출하된다. 하지 감자라 부르며 보리 벨 때쯤 캐낸다 해서 보리 감자라고도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재배하고 있는 대부분의 감자는 미국에서 개발한 수미 품종이다. 감자를 점질과 분질 감자로 구분하는데 수미 감자는 부드럽고 찐득한 느낌이 드는 점질 감자다. 단맛이 나는데 껍질이 얇고 수분이 많은 특징이 있다, 대지 감자는 푸슬푸슬한 느낌이 있는 분질 감자다. 과거에 재배했던 분질 감자인 ‘남작’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요즘은 거의 재배하지 않는다. 그밖에 추백, 조풍, 대서 등 품종이 주를 이룬다. 색깔이 있는 기능성 감자도 나오고 있다.
본격적인 하지 감자 출하 계절인 만큼 좋은 감자 고르는 법을 알아보자. 농협유통 농산팀의 윤경권 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감자 고유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보기 좋은 것, 단단하고 묵직한 것이 좋다. 표면이 젖어있거나 곰팡이가 있는지 살펴보고 너무 마르지 않은 것을 고르면 된다. 상처나 쪼개짐, 껍질 탈피가 있는지 살피고 크기는 요리하는 용도에 따라 고르면 된다. 큰 것은 찜용, 탕용, 볶음용으로 쓴다. 150g 내외 중간 크기 감자는 삶는 용도로 고르면 된다. 아주 작은 것은 반찬용으로 알감자조림에 쓴다.
감자 더뎅이병에 걸려 표면에 코르크질 무늬가 형성된 것은 상품성이 떨어진다. 저장감자가 나오는 시기에는 싹이 나거나 녹색이 있는 것을 피하는 것이 포인트다. 감자는 햇빛을 오래 받으면 솔라닌이라는 유해물질을 생성한다. 1만 년 동안 감자가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솔라닌은 싹과 껍질 부분에 많이 축적돼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제거하고 먹는다. 그래서 감자 보관에는 ‘햇빛 차단’이 가장 중요하다.
안데스 산맥 티티카카호 주변의 잉카인들은 감자를 상온에서 수십 년간 보관하며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개발했다. ‘츄뇨’라 불리는 건조 감자를 만들어 먹을 것이 없는 시기에 먹었고, 군대의 전투식량으로도 썼다. 100g 감자가 물이 빠져 20g으로 줄어드니 내다 팔기도 수월했다. 츄뇨 만들기는 북어 만들기와 비슷하다. 남반구 겨울에 해당하는 6∼7월쯤 5월에 수확한 감자를 일교차가 큰 자연환경을 이용해 말린다. 밤에는 꽁꽁 얼고 낮에는 녹으며 수분이 증발한다. 발로 밟아 껍질과 남은 수분을 제거한 후 흐르는 강물에 쓴맛을 제거하고 다시 말려 보관한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멍석을 깔고 말려 가마니에 보관하거나 흙에 묻어 저장하기도 했다. 요즈음은 1년 내내 좋은 감자를 만날 수 있어 가정에서 장기간 보관할 일이 없다. 오래 저장하면 영양성분도 변하기 때문에 조금씩 사다 먹는 것이 좋다. 가정에서 보관한다면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신문지나 종이상자에 넣어 공기가 잘 통하는 서늘한 그늘에 두면 된다. 싹이 나지 않도록 하려면 감자가 들어있는 상자에 사과를 넣어두면 과일이 익을 때 자연적으로 나오는 에틸렌 가스가 숙성을 촉진하기 때문에 싹이 나지 않는 상태를 더 지속하게 된다.
감자는 쓰임새도 많을 뿐 아니라 요리도 참 다양하다. 밥, 죽, 탕, 국, 전골, 볶음, 구이, 전, 튀김, 조림, 찜, 떡, 빵, 샐러드 등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찌고 삶고 굽고 튀기고, 어떤 조리법으로 요리를 해도 다 맛있다. 조리면 쫀득해지고, 삶거나 찌면 포슬포슬해진다. 굽거나 튀기면 바삭함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식감을 자랑한다.
조리법에 따라 무궁무진한 맛의 세계가 펼쳐진다. 칼로리는 쌀의 절반이고 비타민C 공급원으로 중요하다. 나트륨 배출을 돕는 칼륨도 많다. 적은 양으로도 포만감을 주어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주는 기특한 재료가 감자다. 그 가운데 감자전은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음식이다.
경기관광고 김진미 영양교사는 감자전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준다. 감자를 갈아서 하는 보통 감자전과 달리 감자 5개를 가늘게 채 썰어 밀가루와 튀김가루 한 숟가락씩, 그리고 소금 간을 하여 물 없이 반죽하고 기름을 넉넉하게 넣어 재료를 얇게 깐 다음 튀기듯이 전을 부치는 방법이다. 청양고추를 넣으면 매콤해지고, 당근을 넣으면 색이 좋아 먹음직스럽다. 손님 접대용이라면 모차렐라 치즈를 얹고 파슬리가루를 조금 뿌리면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