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함 뒤에 숨은 수십 가지 첨가물
시사IN / 2015-10-07 14:52


“아저씨 외아들이죠? 그렇게 먹는 거 보면 알아요. 우리 집은 아이스크림 먹을 때 난리를 쳐야 되거든요. 우리 엄만 뭐 하려고 그렇게 애를 많이 낳았는지 몰라” 스푼으로 아이스크림 한가운데 선을 그으며 다림이 말한다. “선을 딱 이렇게 긋는 것부터 전쟁의 시작이에요”
놀이동산에서 각자의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어색해하던 두 사람이 밥숟가락을 나란히 들고 아이스크림 한 통을 나눠먹으며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는 동안,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속 아이스크림은 관계의 친밀함을 보여주는 소품이자 연애의 상징이었다.
차갑고, 달콤하고, 부드럽고, 그래서 행복한 것. 여행자들은 오늘도 영화 <로마의 휴일>(1953) 속 오드리 헵번이 앉았던 로마 스페인광장의 13번째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여름 간식’이라지만 아이스크림을 먹는 데는 계절이 없고, 남녀노소가 없다. 어쩐지 행복한 순간에는 아이스크림이 필요하고 그 ‘찰나의 행복’을 위해 아이스크림이 존재하는 것처럼. 일찍이 볼테르는 “아이스크림은 법으로 금지된 식품이 아니라는 게 안타까울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아이스크림의 ‘~맛’을 내는 건 원재료가 아닌 합성착색료와 합성착향료다. 이 치명적인 아이스크림의 원조 혹은 기원은 어디일까. 서기 37년 로마의 황제 네로가 얼음에 과일과 벌꿀을 토핑해 먹은 게 아이스크림의 시초라는 설이 있다. 시작이 어디건 간에 금방 녹아서 사라져버리는 아이스크림의 속성상 왕과 귀족 등 일부 특권층만이 즐길 수 있는 귀한 별미이자 사치품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17세기 청교도혁명을 전후해 영국에서 일어났던 일은 상징적이다. 당시 영국 왕 찰스 1세가 파티를 열며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디저트’를 주방장에게 주문했다. 이때 주방장이 내놓은 것이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어본 귀족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찰스 1세도 감탄했다.
찰스 1세는 주방장을 불러 500파운드를 하사하며 제조 기술을 비밀로 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왕의 테이블에서만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청교도혁명이 일어나면서 찰스 1세는 참수형을 당했고, 왕이 죽자 주방장은 그동안 비밀로 하던 아이스크림 제조 기술을 공개했다. 그러나 실제 아이스크림이 대중화한 것은 전기냉동 기술이 발달하면서부터다. (<음식 잡학 사전>, 2007)
아이스크림 하나를 만들기 위해 긴 시간과 강도 높은 노동이 필요했던 시기를 지나,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아이스크림 대량생산을 위한 기계 장치가 개발되었다. 거리에는 ‘호키포키맨’이라 불리는 아이스크림 장수도 쏟아져 나왔다.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서는 동전 몇 개만 있으면 되었다. 한국에서는 192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아이스크림이 신문 기사에 등장했다. “애인의 키스보다 한층 더 그리운 여름 하늘 더운 날 아-스구리 맛” (<매일신보> 1930년 6월8일)
한국전쟁 이후까지 길거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은 위생 문제로 불량식품 단속 대상이었지만, 1962년 미국에서 아이스크림 기계를 수입해 공장제 생산을 시작하면서 불량식품 논쟁도 사라졌다. (<아이스크림의 지구사>, 2013) 부라보콘, 투게더 등 1960~1970년대 현대화된 공장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아이스크림은 여전히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럼 이제 아이스크림 포장의 뒷면을 자세히 볼 차례다. 아이스크림 대중화의 역사는 곧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더 싸고’,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첨가물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통칭’ 아이스크림이라고 부르는 것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축산물공전(축산물의 가공 기준 및 성분 규격)을 기준으로 하는 유가공품의 세부 품목인 ‘아이스크림류’와 식품공전을 기준으로 하는 과자류의 세부 품목인 ‘빙과류’가 그것이다. 원유 또는 유가공품을 원료로 해서 만든 것은 아이스크림류이고, 먹는 물을 원료로 하는 것은 빙과류다. 원유나 물에 각종 식품첨가물을 혼합해서 냉동하면 아이스크림이 된다. 유제품이 들어간 아이스크림류는 백설탕(22.8%)과 원유(12.5%)가, 빙과류는 백설탕(65.2%)과 유크림(15.5%)이 주요 재료다. 원유는 전량 국산을 사용하는 반면, 유크림은 전량 수입산을 쓴다. (식품산업통계정보, 2014)
아이스크림에 들어간 탈지분유는 어디서 왔을까
아이스크림류의 주원료는 우유여야 하지만, 탈지분유나 전지분유로 대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우유를 주원료로 한다고 해서 ‘믿음직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항생제나 성장촉진제, GMO 사료를 먹고 자란 소에서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음식백과>, 2011) 원산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것도 문제다. 가공식품의 경우 가장 많이 포함된 원재료 두 가지만 원산지를 표기하고 나머지는 업계 자율로 한다. 게다가 원산지를 표시했다고 해도, 그냥 모호하게 ‘수입산’인 경우가 많다. 원산지가 1년에 세 번 이상 변경될 경우 해당 국가 이름이 아닌 ‘수입산’으로만 표기해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설탕과 우유로만, 혹은 설탕과 물로만 아이스크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스크림에는 원재료 외에도 각종 합성착색료와 합성착향료가 들어간다. 딸기·사과·바나나·녹차·팥·초콜릿이 ‘들어간 것처럼’ 색깔과 향을 내기 위해서다. 아이스크림에서 ‘~맛’을 내는 건 원재료가 아닌 착색료와 착향료다. 이 밖에도 제품을 안정화시키고 점도를 높여주며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구아검과 로커스트콩검, 카라기닌 등을 넣는다. 이 같은 첨가물은 딱딱한 아이스크림을 물컹하고 쫀득거리는 식감으로 바꿔준다. 또한 유지방과 물이 잘 섞이도록 유화제도 들어간다. 유화제는 계면활성제의 다른 이름이다.
한 가지 이름 안에 적게는 세 가지, 많게는 600가지의 식품첨가물이 포함되어 있다. 일괄표시제 때문에 첨가물의 자세한 내용이나 성분에 대해 소비자는 알 수 없다. (<아무거나 먹지 마라>, 2014) 여러 첨가물을 넣어도 사용 목적이 같다면 용도명 하나만 넣어주면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글리세린지방산에스테르:자당지방산에스테르:탄산칼슘=7:2:1’을 혼합한 유화제의 경우 포장지에는 ‘유화제’로만 적힌다. 유화제의 각 원료를 상세히 표기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혼합분유처럼 두 가지 이상의 원료를 포함한 복합원재료도 마찬가지다. 양껏 첨가해도 하나만 적으면 되는 셈이다. (<식품첨가물의 숨겨진 비밀>, 2014)
‘제 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늘 할인 중인 아이스크림 가격도 소비자 처지에서는 의문스러울 수 있다. 소비자 권장가격은 있으나 마나다. 게다가 아이스크림에는 따로 유통기한 표시를 하지 않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아이스크림은 영하 18℃ 이하에서 보관·유통하면 (오래 두어도) 인체에 무해하다”라는 입장이었는데, 소비자단체들의 요청으로 현재는 빙과류에 한해 대량 유통용 포장 박스에 제조 연월일 표기만 의무화되어 있다. (식품산업통계정보, 2011) 아이스크림을 대량으로 사지 않는 이상 제조일자조차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유통기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특히 어린이에게 먹일 아이스크림을 살 때는 두 가지 표시를 확인해볼 일이다. 먼저 어린이 기호식품 품질인증제도(<그림 1>)다.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 제8조에 따른 이 인증표시는 고열량·저영양 식품이 아닌 것으로 1회 제공량당 ‘250㎉ 이하, 포화지방 4g 이하, 당류 17g 이하’의 기준을 충족한 제품에 붙는다.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 제12조 3항에 따른 어린이 기호식품 신호등 표시제도(<그림 2>)는 지방·포화지방·당류·나트륨류로 나눠 각각의 영양성분 함량에 따라 적색·황색·녹색으로 표시하는 방식이다. 식품 1회 제공량당 ‘지방 3g 미만, 포화지방 1.5g 미만, 당 3g 미만, 나트륨 120g 미만’일 경우 녹색으로 표시한다. 하지만 업체들이 인증을 받기 위해 ‘1회 제공량 쪼개기’를 한다는 지적도 있으므로 맹신해서는 안 된다.
2008년 이후 아이스크림 생산량은 등락을 반복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감소하는 추세다. 광업·제조업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아이스크림 및 기타 식용 빙과류 제조업체 수는 2006년 44개에서 2012년 36개로 줄어들었다. (식품산업통계정보, 2014) 그 와중에도 ‘무첨가’, ‘프리미엄’ 라벨을 앞세운 아이스크림들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여러 시사점을 남긴다. <아이스크림의 지구사>의 저자이자 미국인 음식 칼럼니스트 로라 B. 와이스는 “산업화 이전 시대의 수제 얼음과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인공 첨가물을 전혀 쓰지 않은, 소수의 미식가를 겨냥한 최고급 수제 아이스크림 브랜드들이 아이스크림 역사 초기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라고 썼다.